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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에서는 제가 석사 과정 2년을 왜 하게 되었는지, 과정은 어땠는지, 하고나서 어떤 점을 느꼈는지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글이 길어질 것 같아서 이번 글에는 지원 동기를 위주로 작성하고자 합니다.

결과론적으로 얘기를 드리자면, 저는 대학원을 통해 기존 학부의 전공을 바꾸고, 그에 관련된 직무를 수행하는 곳에 취업을 할 수 있게 됬습니다. (그리고 매우 만족합니다.) 하지만 대학원에 취업 목적으로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야, 나는 지금 학부과정 하던거가 답이 없는 것 같으니 이 연구실 가서 xx이나 oo 같은 대기업 취업해야겠다!) 또한 명확한 이유가 있어서 여기 아니면 안된다!는 식으로 결정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유를 설명드리기 전에 저의 학부 시절부터 얘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학부과정을 보내며

저는 고등학생 때 아이언맨을 감명 깊게 봐버리는 바람에 기계공학과를 선택했답니다.. 하하… 하지만 기계공학과는 ‘기계’랑 연관이 그렇게 깊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전자공학과가 더 맞고, 기계공학과에서 배우는 것은 동역학, 유체역학, 열역학, 고체역학과 같이 물리적 현상을 수학적으로 해석하는 과목들입니다. 물론, 이러한 것을 고등학생인 제가 알 길이 없었죠. 그래서 단순하게 로봇과 관련된 일을 하면 행복할 것이란 생각에 기계공학과를 진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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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이 올라가고 심화된 전공과목을 배우면서, 점점 더 저의 열정은 사그라들었습니다. 분명 로봇 관련 일을 하고 싶어서 온건데, 배우는 과목들은 MEMS 설계 제작(반도체 공정에 관한 지식을 배웁니다.), 생산 공정(압연, 인발과 같은 공정기법에 대해 배웁니다. 포스코 제철소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열전달 등을 배우면서 점점 더 이게 맞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기계과에서 역학이 그나마 덜 들어가는 과목으로 제어 파트가 있는데, 저와 같은 친구들이 적지는 않은지 제 동기 중에는 제어쪽으로 계속 배우고 싶다는 친구들이 많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취업하면 제어 쪽으로 가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은 채 저의 학부 과정이 반 이상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타지에서의 인턴

진로에 대한 방향감을 상실한 채, 그저 불안감에 스펙을 채우기 위한 과정이 계속되었습니다. 군대를 갖다오니 해놓은 것은 없어서 뭐라도 해야겠고.. 그 때는 ‘좋아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와 ‘해놓은게 없으니까 이거라도’의 심정으로 학점관리를 열심히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3학년에서 4학년으로 넘어가는 기간에 대전에 있는 한 회사에서 2개월짜리 연구직 인턴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의 심정은 한마디로… ‘착찹함’ 이라는 표현이 제일 적당한 것 같네요. 일단 저를 반겨주는 것은 외진 공장단지에 위치한 연구소였고, 사내 식당말고 밖에서 음식을 먹으려면 차를 타고 시내까지 나가야 하는 환경이었습니다. 물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회사에 부합하면 환경정도야 감수할 수 있는 정도였지만,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 처럼 저는 학부 과정에 대해 확신보다는 ‘회의감’을 더 가지고 있었고, 인턴도 ‘내가 학부를 졸업하게 되면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에 대한 궁금증이 커서 지원한 것이었습니다.

image대덕산업단지 옥상전경… 담배 연기 같은 굴뚝 연기

예전에는 ‘카더라’ 정도의 약한 추측이지만 지금은 제 동기 및 선후배가 취업한 곳을 통해 좀더 설득력이 붙은 얘기를 해드리자면, 기계과로 학부를 졸업하여 바로 취업시장에 뛰어들게 된다면 높은 확률로 공장이 붙어있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대한민국이 반도체와 같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회사이고, 앞에서 말씀드린 것 처럼 기계과에서 배우는 대부분의 지식은 공장의 생산 라인을 관리하는데 사용되는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전, 여수, 이천, 기흥과 같이 공장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죠. 참고로 근무지에 대한 줄세우기를 하려는것이 아니라, 근무지의 선정 이유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과학상자와 간단한 프로그래밍이 포함된 로봇키트를 만들면서 행복해하던 저는 대덕산업단지에서 인턴을 하면서 자동차 에어컨의 풍압을 측정하는 일을 하던 중에 결심했습니다. ‘졸업하고 나서 바로 취업하면 안되겠다… 대학원 가자…’ 이렇게 저는 일단은 ‘취업 유예’라는 명목하에, 그리고 학부 적성에 대한 불만족이란 실질적인 이유로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불안한 졸업학기

인턴을 하면서 ‘전공이 안맞는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졸업까지는 1년도 안남은 나. 저는 약간 ‘멘붕’ 상태에 빠졌습니다. 당시 4학년 2학기때 취업 박람회를 동기 형이랑 같이 구경갔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저는 ‘취업은 하고 싶지 않음’ 이었으나 동시에 ‘취업 이외에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지도 않았음’ 이었기 때문에 심적으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원 원서를 넣어놓았지만 합격 통보가 나지 않은 상태) 그래서 부끄럽지만 구직은 어떻게 하는 걸까라는 정말 아이같은 생각을 하고 취업 박람회에 갔었던 것 같습니다. 취업 부스에 앉아서 앞에 있는 인사 담당자가 질문 있냐고 하면 같이 온 형 얼굴만 쳐다보는…. 지금 생각해도 참 부끄럽네요. 그 형은 성과급과 같은 구체적인 질문도 많이 준비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장 일하고 싶은 직무도 뚜렷하지 않은 나. 세부전공을 선택해서 연구실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에 대한 대비는 덜하면 덜했지 절대로 더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글을 적고 있노라니 정말 어떻게 여기 까지 올 수 있었나 싶기도 하고… 운이 많이 따라준 것 같기도 합니다.

"아 그러니까 연구실은 어떻게 정한건데"

문과 대학원에도 해당하는 절차일지 모르지만, 보통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 직접 해당 연구실의 교수님께 찾아가 ‘컨택’이라는 것을 합니다. 교수님 입장에서는 입학 전형이 시작 되기 전에 내정자를 뽑는 것이고, 입학 전형은 그저 명목상으로 존재하는 것 뿐이지요. 보통 한 번 컨택한 곳에서 무조건 받아준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수능 수시 원서를 여기저기 넣는 것 마냥 여기저기 알아봐야 합니다. 저도 그래서 컨택을 했습니다. 물론! 연구 분야를 정하고 간게 아니라, 당시 같이 대학원 진학을 준비한 형의 조언을 받아 한 교수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졸업 직전까지 계속 방황을 했던 것 같습니다.

뭘 해야갈지 모른 상황에서, 채용부스 앞에 있는 인사 담당자나 상담실에 있는 교수님이나 저의 입장은 비슷했습니다. 뽑아주는 사람은 상대방인데, 저는 질문사항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상황인채로 앵무새처럼 이 연구실에 제 스펙으로 들어갈 수 있냐, 티오가 어떻게 되냐 정도만 물어보고 있었죠.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연구실에서 어떤 연구를 하는지, 해당 연구 분야가 어떤 산업군에서 활용되는지, 연구실 내에서 연구와 과제 비중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물을 것 같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교수님은 자기 말고 다른 곳도 컨택했는지 물어보았고 저는 ‘아니오’라고 했을 때 교수님의 당황한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ㅠㅠ 다행히도 그 교수님이 저의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읽어봐주시고 제가 학부 때 했던 활동과 부합하는 연구실과 교수님을 추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연구실에서 2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로 진학한 대학원은 과연 어땠을까요?

일관성이 준 선물

지금까지 쓴 것만 보면 대학원 진학하기 까지 그 과정이 상당히 위태위태 했지만,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제가 학부 때 일관성있게 해놓은 활동 덕분에 결과적으로는 저에게 잘 맞는 대학원을 진학했다고 생각합니다. 학부 때 전공 수업 이외에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저는 그 과목들을 일종의 탈출구로 생각하여 제가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센서를 활용하여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물론 기계과에서 배운 전공과목을 활용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맨 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진행을 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에 집중을 했는데 지금 보니 힘들었지만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제가 처음으로 컨택을 시도한 교수님이 저의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읽어봐주시고 센서를 기반으로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한 저의 경력을 주목하여 지금의 지도교수님을 추천해주었고, 최종적으로 그 곳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컨택을 할 때 교수님이 이정도로 학생을 신경써주시지는 않는데, 그 때 그 교수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가질 따름입니다.

물론, 진학하게 된 연구실에서의 연구 생활이 그렇게 녹록치는 않았습니다. 전자과 성격이 강한 연구실이어서 역학만 배웠던 학부 시절과는 달리 랜덤 프로세스, 확률과 통계와 같은 수학적인 측면을 많이 공부해야 했고 바쁜 시절에는 거의 몇 주동안 해뜰 때 집에 갈 정도로 좀비처럼 지낸 경험도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센서와 관련된 실무적인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SCI 저널도 1저자로 출판하며 결국 졸업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학부 때 부터 원하던 센서를 활용한 직무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다음 주 부터 자율주행자동차 관련 연구원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 진학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요약하자면 저는 제 적성과 학부와의 전공 간 적합성에 불만이 있었기 때문에 대학원 진학을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하였고, 여러 운도 따라주어서 석사 학위를 통해 제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도움을 준 기회로 사용했습니다. 학부를 졸업하기 전이든 취업을 한 상태든 만약 여러분이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있다면,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대학원 진학이란 졸업 후 자신이 원하는 직무를 선택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전에 예비로 실무 경험도 쌓아보고, 학위도 따면서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죠.

하지만 진학 이후에 자신이 어떤 일을 할 지 진지하게 고민을 하지 않은 상태라면, 무턱대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 1.학부 및 인턴 경험을 통한 학부 전공 적합성에 대한 의문, 2. 프로젝트 과목에서 일관성 있는 흥미 요소에 대한 집중, 3. 첫 번째 컨택 시 교수님의 전공 분야 상담, 이 세가지 요소와 운이 따라줬기 때문에 대학원 졸업 이후 (사실 어떤 세부전공을 선택할 지도 잘 모르는 상황이었죠) 어떤 일을 할 지 모른 상태에서도 다행히 개인적으로 만족할 만 한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대학원 진학을 어떻게 준비해야 될까요"

저 같은 경우는 1, 2와 같은 이유로 학부 졸업 이후에 바로 취업하는 것은 확실히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3번 요소가 없었더라면 어떤 대학원에 진학했을 지 생각만해도 아찔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지금 하는 일이 안맞다는 확신은 있지만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자신이 흥미를 느껴 집중했던 요소를 다시 정리해보시고 교수님과 같은 전공지식을 갖춘 분에게 상담을 미리 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가려는 연구실에 홈페이지가 있다면, 그 연구실을 졸업한 동문들이 어떤 기업에 취업을 하는 것도 산업군을 살펴보는데 좋은 방법입니다. 더 시간이 많으시다면, 그 홈페이지 내에서 publish 된 저널들을 읽어보며 주로 어떤 주제로 저널이 쓰여졌고, 그 주제가 산업에서 어떤 직무에 해당하는지 파악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영문 저널을 읽는 것은 시간도 걸리고 쉽지 않습니다..)

맺으며

제가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학부 때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적어보았습니다. 어떠셨나요? 공학쪽에 한정된 얘기라고 느끼실 수 있지만 모쪼록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물론 지금 하는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지 않다고 대학원 진학이 항상 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회에 진출하고나서 자신이 쌓는 커리어를 고민해볼 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나중에도 할 수 있는 가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쁘지 않은 선택지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은퇴하기 전까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할테니까요! 여러분은 지금 자신의 일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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